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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December 6, 2012

the turbulent Moment for Daehan Korea Empire

http://www.londontimes.tv/sub_read.html?uid=124

大韓帝国、その激動の瞬間
대한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 제국, 그 격동의 순간들



▲ 고종황제(李熙)와 황태자(순종). 1907년 고종황제는 헤이그 밀사에 대한 책임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런던타임즈


▲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윤웅렬(尹雄烈)소장과 그의 손자들. 그는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킨 것으로 인해 106명의 친일 반민족 자 명단에 포함된다 ©런던타임즈



▲ 대한제국 고종황제(당시54세-1902년)의 서울 시내 행차도. 근위병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런던타임즈

우리에게도 제국이 있었다. 비록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 정신과 이름은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거듭 나게 된 것이다. 세계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던 격랑의 시절 속에서 태어나고 막을 내린 대한제국,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수레바퀴는 돌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100 년 전 그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오히려 현 상황은 그 때보다 한층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6자 회담의 주변국 당사자 미·일·중·러 항상 그들이었다.
단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멀리 있던 미국이 코 앞에 다가와 있을 뿐…

대한제국은 친러파의 주도로 고종이 러시아공관에 이동했던 아관파천에서 환궁한 직후에 황제즉위식을 거쳐 1897년 선포 되었다. 비록 외세에 의지한 제국의 설립이었으나 그 것은 자주 독립국을 갈망하던 우리 선조들의 꿈의 실현이었다. 이 즈음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가 결성되고 독립신문이 발간되고 독립문이 세워졌다.

우리 선조들은 그 때 신흥제국 러시아를 너무 믿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멀리 있던 러시아가 어떻게 극동의 한반도까지 세력을 뻗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피터스부르그에서 연해주와 중국의 대련을 있는 시베리아 만주철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주연이 바뀌고 미국의 8함대와 오끼나와등의 미군기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강국 러시아에 의지 했던 대가는 냉혹했다. 내정간섭과 함께 수 많은 이권을 러시아에 주어야 했으며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열강인 갑들에게 을로서 수없이 도장을 찍어대야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되돌아 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자주 독립국인가? 그리고 하나의 강국에만 너무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작금의 친미 반미의 논쟁은 진부하다. 100년이나 되풀이해온 소득 없는 패배주의의 호들갑일 뿐이다. 해방시절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말자 일본놈 일어난다’ 이제 ‘중국놈 주의하자’ 라고 한 귀절 더 붙여야겠다. 동북공정을 통해 준비중인 중국은 북한에 혼란이 오면 그 땅을 접수하려 할 것이다.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하나씩 떼어주고 어찌 몸통만으로 생명을 유지할 것을 기대하겠는가.
일치단결하여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외교에는 균형감각을 살려야 한다.
분열된 모습으로는 살쾡이 한 마리도 물리칠 수 없다.

대한제국은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으로 13년 만에 그 막을 내린다. 친러파였던 이완용 일파가 친일파가 되어 데라우치 총독에게 제국을 들어다 바친 것이다. 무력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들이 지하에서 변명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에게 봉사하는 책임자의 자세가 아니다. 적어도 그 책임 있는 위치에 오른 자는 목숨을 걸고 항거 했어야 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그리며 아직도 가슴시린 100여년 전 역사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김지호 런던타임즈 발행인>


http://sazine.co.kr/ex/1062
大韓帝国皇室の写真展

순종황제 친경식 행사 장면,1909년, 이와타 촬영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수집해온 근대 사진들 중에서 황실 사진만을 선별해 2009년 3월 7일부터 <대한제국 황실 사진전>을 가진다.


지난 2006년 한미사진미술관 확장개관 전 <우리 사진의 역사를 열다>에서 그동안 미술관이 수집해오고 소장해온 근대사진들을 공개해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 사진관련 사진으로는 지운영이 촬영한 것으로 추청 되는 초기 고종 사진, 그리고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공의 결혼 앨범 등이 포함되었었다.

<대한제국 황실사진전>은 그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전시로 미술관 근대사진 소장품 중에서 황실사진만을 선별해서 기획된 전시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부터 영친왕과 이우의 초상 사진, 순종의 친경식, 그리고 고종의 국장 등 황실과 관련된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최근까지도 명성황후의 초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궁중의 여인의 원본사진이 처음 공개된다. 이 사진은 다양한 형태로 복사 또는 제작되고 변형되어 진위여부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원본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확대되거나 사진의 상태로 인해 복사본이 전시되는 것이 아닌 역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사진의 원본들로 전시가 구성되며, 앨범 속의 사진들은 영인본으로 제작되어 관람객들이 직접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들춰볼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한미사진미술관의 <대한제국 황실사진전>은 조선 왕조 519년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황실이었던 대한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태왕국장의사진첩-조선장열,1919년,촬영자 미상


남서 순행을 마치고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순종과 일행들, 촬영자 미상, 1909년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 촬영자 미상, 1907-1910년


일본 황태자 한국방문 기념사진, 촌상천진촬영,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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