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

Monday, January 27, 2014

Yi Gok,korean poemer in Goryeo era

李穀 【りこく】
이곡(李穀, 1298년 ~ 1351년)

1件の用語解説(李穀で検索)

世界大百科事典 第2版の解説
りこく【李穀 (R)I Kok】 1298‐1351

朝鮮,高麗末期の文臣,学者。字は仲父,号は稼亭。韓山の人。高麗と元の科挙にいずれも及第し,当時の困難な外交関係に功労があった。《編年綱目》《三朝実録》の編纂に参与し,《稼亭集》20巻が伝わる。他に開城演福寺の蒙古鐘の銘文が有名。《竹夫人伝》は,唐・宋古文家の伝奇文に倣い,竹を擬人化して婦人の節義の尊さを説いた作品で,当時新興の朱子学者層の清新な理念が表現されている。諡号(しごう)は文孝。李穡(りしよく)はその子である。


http://world.kbs.co.kr/japanese//program/program_koreanstory_detail.htm??lang=j&current_page=10&No=30258
韓国偉人伝トップページ > 番組 > ネットコンテンツ  > 韓国偉人伝
文益漸2011-09-22
文益漸
朝夕が急に冷え込み始めた今日この頃、思い出される人物がいます。
綿花の種を持ち帰り、人々が温かく冬を過ごせるようにしてくれた人物、文益漸(ムン・イクチョム)です。
冬でも薄い麻の服しかなかった高麗時代、文益漸のおかげで韓半島でも暖かい木綿の服が着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高麗末期の1329年、都から落郷した貴族の次男として生まれた文益漸は、12歳の時に大学者李穀(イ・ゴク)の門下生となります。
元の国の科挙試験に合格するほど優れた学問の持ち主だった李穀は、元の皇帝に建議して80年間続いていた 「貢女制」(高麗の女性たちを元に差し出すという悪習)を廃止させた人物です。
そういう師の下で、文益漸は人のために役立つ人物、人間が人間らしく暮らせる社会を作ることが貴族・ソンビの道だと悟ります。

文益漸は1360年に科挙に合格、政府の役職に就き、1363年、書状官(外国に出かける使臣に従う役)として元に行くことになりました。
この時期の高麗は、恭愍(コンミン)王による国権回復政策と親元派の粛清により、元との関係が極度に悪化していました。
そのため、使臣として派遣されれば、そのまま抑留されたり、場合によっては命まで奪われることもありました。
文益漸も42日間拘留されてから、綿花の栽培が多い雲南地方に配流されてしまい、3年間の抑留生活を送ることになります。


ようやく祖国への帰還が認められた文益漸の荷物の中には祖国への特別なお土産が入っていました。
李穀の影響で早くから元の農業書を学んでいた文益漸は、農業と織物に特別に関心を抱き、綿花の存在を知っていました。
当時、綿花の種は禁制品で、元が他国への持ち出しを禁じていました。
そこで文益漸は筆の筒の中に綿花の種を隠し、密かに祖国に持ち帰ったのです。
祖国に戻った文益漸は妻の父である鄭天益(ジョン・チョンイク)とともに綿花の栽培を始めます。
3年後にようやく花が咲き、4年後には村全体に綿花の種を分け与えてや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その次には、今度は綿花から糸を取り出し、布に織るための機械が必要になりましたが、幸い、中国の僧侶の助けによりついに最初の木綿の服が作られました。

鄭天益による綿花の栽培と、綿布の生産は、まさに高麗末期から朝鮮初期にかけての産業革命だといえます。





http://hwalove.tistory.com/entry/%E5%80%9F%E9%A6%AC%E8%AA%AA%EC%B0%A8%EB%A7%88%EC%84%A4-%EF%A7%A1%E7%A9%80%EC%9D%B4%EA%B3%A1
借馬說(차마설)-李穀(이곡)

빌린 말을 논하는 글
余家貧無馬(여가빈무마) :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或借而乘之(혹차이승지) :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한다.
得駑且瘦者(득노차수자) :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말을 얻었을 경우에는
事雖急(사수급) : 일이 아무리 급해도
不敢加策(부감가책) :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한 채
兢兢然若將蹶躓(긍긍연약장궐지) : 전전긍긍하니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것아서
値溝塹則下(치구참즉하) :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면 또 말에서 내리곤 한다.
故鮮有悔(고선유회) :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得蹄高耳銳駿且駛者(득제고이예준차사자) :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陽陽然肆志(양양연사지) : 의기양양하여
着鞭縱靶(착편종파) :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平視陵谷(평시릉곡) : 언덕과 골짜기를 모두 평지로 간주한 채
甚可快也(심가쾌야) : 매우 유쾌하게 질주하곤 한다.
然或未免危墜之患(연혹미면위추지환) :
그러나 간혹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환란을 면하지 못한다.
噫(희) : 아,
人情之移易一至此邪(인정지이역일지차사) :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借物以備一朝之用(차물이비일조지용) :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尙猶如此(상유여차) : 오히려 이와 같은데
况其眞有者乎(황기진유자호) :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어떻겠는가
然人之所有(연인지소유) :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孰爲不借者(숙위부차자) : 무엇이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겠는가.
君借力於民以尊富(군차력어민이존부) :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臣借勢於君以寵貴(신차세어군이총귀) :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子之於父(자지어부) :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婦之於夫(부지어부) :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婢僕之於主(비복지어주) :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其所借亦深且多(기소차역심차다) :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은데
率以爲己有(솔이위기유) :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而終莫之省(이종막지성) : 끝내 돌이켜 보려고 하지 않는다.
豈非惑也(개비혹야) :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苟或須臾之頃(구혹수유지경) :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還其所借(환기소차) :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則萬邦之君爲獨夫(즉만방지군위독부) :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百乘之家爲孤臣(백승지가위고신) :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况微者邪(황미자사) :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孟子曰(맹자왈) :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久假而不歸(구가이부귀) :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았으니
烏知其非有也(오지기비유야) :
그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余於此有感焉(여어차유감언) : 내가 이 말을 접하고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作借馬說以廣其意云(작차마설이광기의운) : 차마설을 지어서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http://kkumai.tistory.com/201

목은


李穡字穎叔號牧隱元朝授翰林知製誥恭愍朝門下侍中文章伎術爲縉紳領袖入本朝封韓山伯謚文靖이색자영숙호목은원조수한림지제고공민조문하시중문장기술위진신영수입본조봉한산백익문정

이색,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원나라에 가서 한림지제고(翰林知製誥)를 지냈으며,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냄. 문장과 기술이 뛰어났으며, 진신(縉紳)의 영수(領袖)임. 조선조에 들어와 한산백(韓山伯)을 봉함. 시호는 문정(文靖).

1328년(충숙왕15)~1399년(태조5).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이곡(李穀)의 아들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1341년 진사가 되고, 1348년 원(元)나라에 가서 성리학을 연구했다. 귀국 후 명륜당에서 정몽주(鄭夢周)⋅김구용(金九容) 등과 학문을 강론, 이에 정주(程朱)의 성리학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조선 개국 후 태조는 출사를 종용했으나,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故山)에 묻을 뿐이라고 하며 끝내 사양하였다. 다음 해 피서차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죽음으로써 후세에까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문하에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했다. 저서로 『목은집(牧隱集)』이 있다.

원이 고려를 간접하기 시작한 이후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다. 재야에서 개혁의 시기를 엿보던 이들이 공민왕 때부터 점차 정치 무대에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신진사대부’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들은 성리학을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행하려 한 유학자들이었다.

수많은 유학자들은 과거를 위해 원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원의 과거에 합격하면 원에서 벼슬을 할 수도 있었고, 원의 벼슬은 고려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원의 유학자들이 주자학을 과거에 적용하면서 주자학이 공부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의 지식인들은 원의 유학자들과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주자학을 배우게 되었다. 충선왕이 원의 수도 연경에 세운 만권당에는 당시 유명한 원의 학자들이 드나들었고, 이제현(李齊賢)과 같은 학자들은 이들과 사귀면서 주자학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현의 제자 격인 아버지 이곡(李穀)의 뒤를 이어 이색(李穡)이 원의 과거에 합격할 무렵은 성리학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넓어지고, 이를 추구하는 사람도 늘어났을 때였다.


이색(李穡, 1328-1396)은 원에서 한림원에 등용되는 등의 탄탄대로의 길을 가다, 귀국 후 공민왕의 개혁 정책에 적극 참여한다. 성균관을 다시 짓고, 성균관 초대 학장[대사성]으로 성리학풍의 진작과 신진 사대부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아래 교관들인 정몽주, 박상충, 이숭인 등이 모두 성리학을 공부한 이들이었다. 또한 권근, 정도전과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여 조선 초기의 정치와 학문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성계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했을 때, 우왕이 강화로 쫓겨나자 창왕을 옹립하여 이성계 일파를 견제했다. 하지만 이성계가 세력을 잡자 장단(長湍)에 유배되었다.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 유배되었다가 태조 원년에 풀려났다.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지고 이성계의 출사(出仕) 종용이 있었으나 끝내 고사했으며,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에 그 생을 마감한다.

조선의 건국을 놓고 의견 대립을 하면서, 고려 왕조를 유지하는 길을 선택하여 비극적 최후를 맞지만 이색은 한 시대의 스승으로 후대까지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스승 이제현이 택한 노선을 발전시키고, 아버지 이곡이 이루고자 한 바를 이어서, 이색은 성리학의 목표인 ‘경세치민(經世治民,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한다)’을 향해 평생 정진하는 삶을 살았다. 스스로 저술하고 창작한 성과가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자를 길러내 사상과 문학에서의 새로운 기풍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가 남긴 시조 ‘白雪이 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는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갔던 한 지식인의 방황과 고려를 향한 절의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http://kuiwon.wordpress.com/category/korean-eras-%E9%9F%93%E5%9C%8B%E6%99%82%E4%BB%A3-%ED%95%9C%EA%B5%AD%EC%8B%9C%EB%8C%80/goryeo-dynasty-%E9%AB%98%E9%BA%97-%EA%B3%A0%EB%A0%A4-918-1392/yi-gok-%E6%9D%8E%E7%A9%80-%EC%9D%B4%EA%B3%A1/

Yi Gok (李穀, 이곡, 1298-1351) was a literati bureaucrat during the Goryeo Dynasty (高麗, 고려, 918-1392). He was of the Hansan Yi Clan (韓山李氏, 한산이씨); his courtesy name (字, 자) was Jungbo (仲父 , 중보); his pen name (號, 호) was Gajeong (稼亭, 가정); and his posthumous name (諡, 시) was Munhyo (文孝, 문효). He passed the civil examinations (科擧, 과거) in Yuan Dynasty China (元, 원, 1271-1368).

In the poem below, Yi Gok writes about the Mid-Autumn Festival, or Jungchujeol (仲秋節, 중추절). It is more commonly known as Chuseok (秋夕, 추석) or Hangawi (한가위). Today, Chuseok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raditional Korean holidays. Families head back to their hometowns and carry out ancestral rites.

中秋翫月 중추완월

Teasing the Moon on the Mid-Autumn Festival

客路相逢喜可知 객로상봉희가지
况當佳節共吟詩 황당가절홍음시
他鄕異縣各千里 타향이현각천리
古月今人此一時 고월금인차일시
徹夜秋光淸欲滴 철야추광청욕적
明朝世事浩難期 명조세사호난기
無端頃刻冰輪側 무단경각빙륜칙
仰面貪看豈敢辭 앙면탐간기감사

On the travelers’ road, people can know the joy of a meeting.
Moreover, on this beautiful occasion, together they recite poetry.
Another’s village and a different prefecture, each is a thousand Li away.
The ancient moon and today’s people, these are at all one time.
All night, the autumn light is like a clear water drop.
Tomorrow morning, the world’s affairs will be as if extensively difficult duties.
Without any aims, in an instant, next to the icy moon,
How does one dare to refuse to look up to greedily stare at it?

Definitions:

Guest • road • one another • to meet • joyous • to be able • to know
Moreover • properly • beautiful • day • together • to recite • poetry
Other • village • different • prefecture • each • thousand • Li
Ancient • moon • today • people • this • one • time
to pierce • night • autumn • light • to be clear • to become • water drop
tomorrow • morning • world • affairs • to be extensive • to be difficult • promises
To not have • end • in a moment • time • ice • wheel • adjacent
To look upward • face • to be greedy • to look • how • to dare • to refuse

Notes:

冰輪(빙륜) – Literally, “ice wheel.” Refers to the moon.

Goryeo Dynasty (高麗 고려 918-1392)

No comments:

Post a Comment